[[분류:역사]] == 개요 == 오랜 시간을 이어온 지중해를 둘러싼 최대의 제국 로마 제국에 대한 설명이다. == 역사 == === 극초기: 로마 왕국 === 본래는 로마 왕국으로, 최고 지도자인 왕이 통치했다. 이 시기 로마는 그저 작은 왕국 중 하나로, 현재 로마시 인근 매우 좁은 영역만을 통치했다. 로마 주변에는 에트루리아인이 살고 있었으며 그리스 문자를 변형해 에트루리아 문자를 만든 이들로부터 문자를 배워 현대 로마자로 불리는 라틴 문자를 형성하기도 했다. 건국 신화에 따르면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나라를 세웠고 로물루스의 이름으로부터 로마가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이 시기 로마 역사를 로마 7왕이 다스렸다고 하는데, 아직 신화적 요소가 많아 글자 그대로 믿는 건 좋지 않다. 5대 왕인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부터 에트루리아계의 왕이 다스리는데, 여기부터는 고고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사실들이 많이 보인다. === 중기: 로마 공화국 === 로마는 기원전 509년경 기존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유지했고, 이는 후대 공화주의 이념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 시기 로마의 군사력은 매우 강해져서, 에트루리아인을 무찌르고 이탈리아 반도를 정복하기도 했다 (피로스 전쟁). 이제 이탈리아 반도 남쪽의 시칠리아 섬과 국경을 맞닿게 되어 시칠리아 섬의 주도권을 갖던 세력 카르타고와 제1차 포에니 전쟁을 하고, 여기서 이겨서 현재 이탈리아 영토 대부분을 먹게 된다. 약 20년 후 카르타고의 한니발 바르카가 이탈리아 반도로 침입하며 제2차 포에니 전쟁을 하는데, 여기서 유명한 것이 전설의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 산맥을 횡단한 이야기이다.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어찌저찌 이긴 로마는 지중해 패권을 어느 정도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측에서는 마케도니아 왕국을 무너뜨리고 소아시아에서도 셀레우코스 왕국을 무너뜨리며 소아시아(아나톨리아)까지 장악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로마의 성장은 너무나도 급속도였기에 기존 농경제도가 붕괴했고 카르타고에서 수입된 라티푼디움 경영으로 인해 자영농이 축소되고 귀족이 독점적으로 재산을 쌓기 시작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라쿠스 형제가 농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나름 평화롭게 지내던 로마는 카이사르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는데, 그는 갈리아 총독으로 부임해 갈리아(프랑스) 전역을 로마가 차지하는 데 일조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총독이었으므로 군대를 갖고 있었고, 그의 높은 권력과 명성으로 인해 그를 제거하려 하던 원로원과의 대립 끝에 카이사르가 히스파니아(이베리아), 갈리아(프랑스), 그리스 등에서 원로원 군대를 격파하고 1인자가 되었다. 결국 그는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을 남기고 원로원에 의해 죽었고 그의 양자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얻고 황제가 된다. === 전성기: 로마 제국 === 아우구스투스가 황제가 되며 로마는 제국으로 전환된다. 이 시기 로마는 브리타니아(잉글랜드, 웨일스), 갈리아(프랑스), 게르마니아(독일 남부), 알프스 지역, 도나우강 중·상류 지역(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인근), 도나우강 하류 지역 및 발칸반도, 그리스, 아르메니아, 캅카스, 아나톨리아, 메소포타미아(이라크), 시리아, 트리폴리타니아(리비아), 히스파니아(이베리아), 이집트 등의 속주를 거느렸다. 지명을 보면 알듯이, 지중해를 둘러싸는 구조의 국가였으며 이 때문에 로마인들은 지중해를 Mare nostrum(우리의 바다)라고 불렀다고 한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매우 안정된 국가였다. 그러나 군인 황제 시대가 도래하며 로마 제국은 위기를 맞는다. 그러다가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등장하며 로마는 다시 한 번 회복될 수 있었는데, 사두정치로 불리는 분할통치를 함으로써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당시 음지에서 음지로 전도되고 있던 [[기독교]]를 매우 박해했다.[* 이전에도 기독교 박해는 종종 있었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가 가장 커서 '대박해'라고도 불린다. 교회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승에 의하면 박해로 인한 순교자가 수십만 명에서 수백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한편 학계에서는 '순교'라는 단어의 정의를 확실히 기독교에 믿은 것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고 실제로 죽은 사람으로 좁게 잡고 그 사형이 실제로 확인된 사람만 순교로 카운트 한다. 학자마다 다르지만 확실히 순교한 사람은 수천 명 정도 된다.] 그러다가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기, 내전까지 불러일으켰던 사두정치를 통합하고 313년 마침내 기독교를 공인하는 밀라노 칙령을 내림으로 로마에 기독교를 공인한다. 그는 로마에서 다른 지역으로 천도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신도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수도를 옮긴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현재 이스탄불이다.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로마는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 이후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테오도시우스 1세의 사후 그의 자식들에게 로마 제국을 분할해 나눠주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로마는 두 국가로 쪼개졌고,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으로 분리되었다. 서로마 제국은 그대로 로마를 수도로 삼았으며, 라틴어를 공용어로 사용했고, 대략적으로 히스파니아, 갈리아, 브리타니아, 북아프리카 서부, 이탈리아 반도가 속했고 동로마 제국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도로 삼았으며, 그리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했고, 대략 그리스, 아나톨리아, 이집트, 팔레스티나, 시리아가 속했다고 보면 된다. 서로마 제국의 경우 저 멀리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훈족에 의해 게르만족이 남하하며 반달족, 부르군트족, 랑고바르드족, 고트족, 수에비족 등에 의해 하나씩 땅을 빼앗기며 475년 오도아케르에 의해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다. === 황혼기: 동로마 제국 ===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과거 로마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노력을 했고, 이에 따라 서로마 제국 영토 곳곳에 자리잡은 반달 왕국, 서고트 왕국, 동고트 왕국, 부르군트 왕국 등을 하나씩 때려잡으며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이베리아 일부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영토를 되찾는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흑사병이 재유행하며 도시화가 많이 진행되어있던 동로마 제국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만다. 이렇게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페르시아의 사산왕조와 죽기살기로 결전을 치르며 힘을 다 빼는 사이 급성장한 [[이슬람교|이슬람]]이 발흥하며 아르메니아, 시리아, 레반트, 이집트, 북아프리카 등 주요 영토를 잃으며 동방 영토마저 많이 상실하게 되고 동로마 제국은 다시 내리막길을 걷는다. 이렇게 그리스와 아나톨리아, 트라키아 영토만 남은 상황에서 서방에서 십자군 원정을 시작하며 [[기독교]]의 동서 대분열로 인해 로마 가톨릭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정교회가 적대 관계를 이루는 상황 속에서 1204년 제3차 십자군 원정 때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며 잠시 라틴 제국이 세워진다. 이 시기 동로마 제국은 아시아 쪽에서 발흥해오던 셀주크 튀르크에게 계속 패배를 당하며 아나톨리아의 대부분을 빼앗긴 상태였다. === 최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 1261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되찾은 후 팔레올로고스 가문이 동로마 제국을 되살려 보는 시도를 했으나 이미 역부족이었다. 1400년대가 이르면 동로마 제국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콘스탄티노폴리스 인근 매우 좁은 지역만 다스리는, 사실상 도시 국가의 형태를 갖췄다. 1453년 5월 29일 마침내 오스만 제국과 최후의 결전을 치르고,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동로마 군대는 집결하여 최선을 다해 싸웠고 결국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여기에는 수많은 전설이 있다. 먼저 로마 제국은 오래전부터 달이 떠 있는 동안에는 멸망하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었고, 실제고 1453년 5월 24일 밤 보름달이 떴으나 개기월식이 일어나며 로마 시민은 망연자실에 빠진다. 또 창건자의 이름과 같은 황제 시기에 멸망한다는 전설도 있었는데, 동로마 제국의 창건자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천도한 콘스탄티노스 대제로 볼 수 있고 그의 이름과 같은 콘스탄티노스 11세였기에 로마 시민은 더욱 충격에 빠진다. 멸망한 후에도,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고 이에 그리스인 사이에서는 그가 죽지 않고 언젠가 부활한다고 전해진다. 5월 28일에는 성 소피아 대성당에서 예배가 열렸으며 서방 지원군(가톨릭)과 동로마 군대가 모두 모여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로마가 멸망하는 날 밤에는 시민들과 성직자들이 성 소피아 대성당에서 끝까지 예배를 드렸으며 오스만군에 의해 끌려나가는 순간까지도 사제들이 성가를 부르며 벽 속으로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모두 오스만에서 노예로 팔렸으나, 정교회에서는 성직자가 예배를 중단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그리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다시 차지하게 되면 사제들이 다시 벽에서 나와서 예배를 마친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렇게 고대 로마부터 내려온 로마는 2206년에 이르는 역사를 마감하고 장엄한 최후를 맞는다. 성 소피아 대성당은 이슬람 모스크로 개조되었고 수많은 정교회 성당이 이슬람 모스크로 개조되었다. == 로마의 후계자 == 유럽에서 로마 제국의 위상은 말 그대로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많은 세력들이 로마 제국의 후예를 자처하게 되었다. [[성경]]에는 거대 제국 4개로 신바빌로니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알렉산드로스 제국, 로마 제국으로 이는 곧 제국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로마의 후예임을 입증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많은 제국이 로마의 후예를 자처했으며, 분할 이전 로마의 후예에는 이탈리아, 루마니아, 스페인 제국이 있다. 이탈리아는 로마를 수도로 삼고 있으며, 루마니아의 경우 이름부터 Romania로 다키아 지역에 남아있던 로마인이 세운 국가이다. 스페인 제국의 경우 히스파니아 속주의 후예를 천명했다. 동로마 제국을 계승한 국가로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도로 삼은 오스만 제국, 동로마 제국의 유산과 문화, 종교를 그대로 계승한 그리스와 근대 유일한 정교회 강대국이자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조카딸로부터 혈통이 이어진 러시아 제국이 있으며 서로마 제국을 계승하는 국가로는 신성 로마 제국의 전신 프랑크 왕국의 계승을 자청한 프랑스, 신성 로마 제국의 후예인 독일과 합스부르크 왕조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라틴계 국가 브라질이 진정한 로마의 후예이다--